Concierto de Aranjuez for Guitar and Orchestra, 2nd mov
Julian Bream
Simon Rattle,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몇주전 형섭형이 들을만한 곡 하나 보내라고 해서 그때 듣고 있던 이 곡을 보냈다. 서로 취향을 너무 잘 아는 탓에 형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 적당히 쓸쓸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듣기 쉬운 곡을 원하는 것이란것 쯤은 쉽게 눈치챌 만큼 서로를 잘 안다. 그렇기에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익숙한 곡으로 보낸곡이 이 곡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형이 끝까지 듣지 않을 것 또한 매우 잘 알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타와 잉글리쉬 호른까지는 잘 들었겠지만곡 중간의 변주와 카덴짜의 고개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4~5분에 적응된 사람이 12분을 버티기 힘들다는것도 안다. 나도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 어떤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접하는 순간의 심정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익숙한 부분은 익숙한대로 그리고 즐겁게 들으면 된다. 오케스트라가 사라지고 난 뒤에 독주 악기가 시작되면 잠시 신경을 다른곳으로 돌려도 좋다. 가만히 아무일도 하지 않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있어도 좋고, 담배를 한대 피워도 좋고, 짤막한 글을 읽어도 좋다.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은 공상이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할때 짓는 특유의 얼굴 모습 - 이사람은 지휘를 몸통과 양 팔 이외에 얼굴로도 지휘를 한다 - 을 상상하기도 하고 몇년전에 본 '호아킨 로드리고' 특집방송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좋다. 그러면서 몇년 전에 이 곡을 처음 들었을때보다 많이 좋아진 집중력, 그때는 3분이었지만 지금은 6분의 '이상한' 부분까지 집중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한다.

그렇게 8분 중반까지 참으면 또다시 익숙한 오케스트라가 피날레를 만든다. 마치 지루한 변주를 잘 참아낸 것에 대한 보상처럼 서주부분보다 훨씬 아름답고 유려한 톤으로 이제는 이 곡이 끝나는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는 여타 협주곡들의 2악장과 마찬가지로 고요하게 끝을 맺는다.

형섭이형에게 이 곡을 보내고 난 뒤에 형이 이 곡을 듣다 어느 순간에 재생을 멈추리라는 '사실과도 같은 예상'을 했음에도 이 곡을 보낸 이유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 곡이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갈 날이 있을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었던 것 처럼 언젠가는 그 사람의 정서에 맞을 날이 있다. 그리고 이런 감상법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 갈것이다.

ps. 이런 방법이 속된말로 '야매' 감상법이라 비난해도 개의치 않는다. 왜냐면 이쪽계통은 야매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야매와 정통의 사이는 매우 가까워 정통 중에도 야매가 다수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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